黃 錦燦 시 - 등대지기



등대지기


등대지기는 바다의 난초
열 길 벼랑 안개 속에 피어 있는
석란

밤이면 등대에 불을 밝히고
비가 오는 낮
안개 덮인 때

긴 고동을 울리며
배들이 무사히
귀향하기를 마음으로 빈다.

풍랑이 심한 날 바위에 서서
흘러간 난파선들의 추억을
더듬어 본다.
석란 잎에 서리는 이슬

열 길 박토에 뿌리를 걸고
해풍에 말리며
변변한 날 없이
그대로 시들어 가는
석란이라 하자.

일 년에 한두 번씩
낯모를 사람들이
찾아 왔다 돌아간다.
가물거리는 돛대 끝에
그리움은 칼날

육지의 계절은
도적이다.
마지막 잎이 지고나면
바다에 눈이 온다.

바위 위의 촛불이 흔들리듯이
바다의 난초는
눈 속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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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鎬雨 時調碑 - 살구꽃 핀 마을 文學,詩...碑



살구꽃 핀 마을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가타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바녀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 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초당-草堂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이 호우-李鎬雨 (1912.3.2~1970.1.6) 경북청도출생. 본관 경주. 아호는 본명을 취음하여 이호우-爾豪愚라함.


父 郡守 鐘洙, 母 具鳳來, 누이 永道도 시조시인. <竹筍>同人.

향리의 의명학당을 거쳐 밀양보통학교졸,
1924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입학,
1928년 신경쇠약증세로 낙향.
1929년 동경예술대학 유학 하였으나 신경쇠약증세 재발과 위장병으로 학업을 포기.
1930년 귀국.
1934년 김해 김씨 順南과 혼인.
1939년 <동아일보> 투고란에 <落葉>을 발표하면서 詩作을 하여
1940년 <文章> 6.7호 합병호에 時調 <달밤>이 李秉岐의 추천으로 본격적으로 전개 됨.
1945년 <대구일보> 편집과 경영에 참여
1952년 <대구일보>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역임.
1955년 <이호우시조집> 영웅출판사
1956년 <대구매일신문>편집국장 및 논설위원 역임.
1968년 <영남시조문학회>조직
오누이 시조집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中 1권인 <휴화산>발간으로 화제가 됨.
편저로 <古今時調精解>가 있으며
1955년 제1회 경북문화상 수상하였다.
2003.11.29
청도군수 건립하고 題字 심 재완, 詩文 민 영보, 구성 이 병준, 글 민 영도.
경북 청도군 유천면 내호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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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 度眩 詩 - 연탄 한 장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 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일 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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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馹孫 文學碑 - 頭流記行錄 文學,詩...碑



頭流記行錄-두류기행록

滄波萬頃櫓聲柔 창파만경노성유 푸른 물결 가득하고 노 젓는 소리 고요한데
滿袖淸風却似秋 만수청풍각사추 소매 가득 맑은 바람 도리어 가을인가
回首更看眞面好 회수경간진면호 고개 돌려 다시 보니 참 모습이 아름다워라
閒雲無跡過頭流 한운무적과두류 느릿한 저 구름 두류봉 지나 자취를 감추네
1489.4.29 (26세) 섬진강에서 두류산을 읊은 詩

김 일손(金 馹孫, 1464년 ~ 1498년 7월)은 조선 성종·연산군 때의 문신이며 학자, 사관이다.
본관은 김해,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또는 少微山人이며 대대로 청도에 살았다.
할아버지는 克一, 아버지는 집의-執義 맹-孟이며, 어머니는 이씨이다.

1464년 태어나 1478년 14세 단양 우씨와 혼인하고, 선산의 이맹전을 찾아 배알하였다.
1481년 까지 할아버지로부터 <소학>, <四書>, <통감강목通鑑綱目>등을 배웠으며, 이후 김종직의 문하에 들어가 평생 사사하였다.
1483년 부친상을 당하였고, 그 당시 사림의 대표적 으뜸이던 김종직의 문하생이 되었다.
1486년 (성종 17년)에 사마시에 수석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같은 해 식년문과-式年試에 차석으로 급제하여
예문관에 등용된 후,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사가독서-賜暇讀書한 뒤 이조정랑-吏曺正郞까지 올랐다.
1489년 음력 11월 요동질정관으로 1차로 북경을 다녀왔다.
1490년 음력 3월 노산군 입후치제를 주장하고 음력 4월 <육신전>을 첨삭하였으며 음력 11월 진하사가 명나라에 파견될 때
서장관으로 다시 북경에 다녀왔다.
성종 때 춘추관의 기사관으로, 전라도 관찰사 이극돈-李克墩의 비행을 직필하고,
그 뒤 헌납 때 이극돈과 성준이 새로 붕당의 분쟁을 일으킨다고 상소하여 이극돈의 원한을 샀다.
1496년 음력 1월 소릉복위 상소를 올리고 음력 3월 모친상을 당했다.
1498년 (연산 4년)<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앞서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史草에 실은 것이 이극돈, 유자광 등을 통해
연산군에게 알려졌다. 그 내용인 즉, 세조를 비방하고, 노산군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던 것이다.
곧 체포되어 심한 고문 끝에 대역죄로 음력 7월 광통방-廣通坊(조흥은행 본점이 있던 광교 네거리 근처)에서 능지처참되고,
권경유, 권오복, 허반 등 다른 많은 사류도 화를 당하게 되었다.
이를 무오사화라 한다. 이를 계기로 성종 때에 날개를 펴며 등장한 신진 사림은 집권층인 훈구파에게 거세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 후 신원-伸寃되고, 문민-文愍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도승지가 추증되었다.
목천의 道東書院, 청도의 자계-紫溪書院에 배향되었다.

문집에 <탁영집-濯纓集>있으며 <회로당기-會老堂記>, <속두류록-續頭流錄>등 26편이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수록되어 있다.
1998.4
한국문학비건립동호회 이상보 짓고 심 재완 쓰다.
한국문학비건립동호회 강재철외 86인 협찬外 청도군수, 후손 영모회장, 17대 종손 세움.
경북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 자계서원에 있다.



민 구 - 오늘은 달이 다 닳고


오늘은 달이 다 닳고
나무 그늘에도 뼈가 있다
그늘에 셀 수 없이 많은 구멍이 나있다 바람만 불어도 쉽게 벌어지는 구멍을 피해 앉아본다
수족이 시린 저 앞산 느티나무의 머리를 감기는 건 오랫동안 곤줄박이의 몫이었다
곤줄박이는 나무의 가는 모근을 모아서 집을 짓는다
눈이 선한 저 새들에게도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연장이 있다 얼마전 죽은 곤줄박이에
떼 지어 모인 개미들이 그것을 수거해가는 걸 본 적이 있다
일과를 마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와서 달이 떠오를 무렵 다시 하늘로 솟구치는데,
이때 달은 비누다
뿌리가 단단히 박혀서 번뇌만으로는 달에 못 미치는 나무의 머리통을 곤줄박이가 대신,
벅벅 긁어주는지, 나무 아래 하얀 달 거품이 흥건하다
오늘은 달이 다 닳고 잡히는 족족 손에서 빠져나가 저만치 걸렸나
우물에 가서 밤새 몸을 불리는 달을 봐라
여간 해서 불어나지 않은 욕망의 칼,
부릅뜨고 나를 노린다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詩 당선작.
민 구. 83년 인천출생. 명지대문창과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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