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흑구 - 東海散文


한흑구님의 첫 수필집이다.
목차
책머리에
나무, 새벽, 눈, 비가 옵니다, 봄비, 진달래, 보리, 길, 닭 울음, 감, 집, 산 , 새, 봄빛
화단의 봄
1. 달래
2. 화단
3. 꽃씨
4. 아주까리
새, 제비, 부드러운 여름 밤, 가을 하늘같이, 귀뚜라마 소리를 들으며
나의 壁書
1. 죽음
2. 사랑
3. 감투
4. 慾望
5. 피
6. 修業
老年, 책, 밤을 달리는 列車, 車窓風景, 祈願
東海散文
1. 바다
2. 六月의 東海
3. 갈매기
4. 盛夏의 바다
5. 겨울바다
文檀交友錄
1. 靑馬와의 交遊記
2. 未堂의 술과 詩
3. 芝薰의 人情美
隨筆論
1. 隨筆의 形式
2. 隨筆의 類型
3. 文學的인 隨筆
隨筆의 形式과 精神
1. 隨筆의 形式
2. 隨筆의 精神
수필이란 하나의 주제를 평이하고 문학적으로 간단하게 쓴 글이다.
각 테마를 원고지 3~4매의 분량으로 간단, 명료하게 적은 글들이다.
책속에서
보 리
1
보리.
너는 차가운 땅 속에서 온 겨울을 자라왔다.
이미 한 해도 저물어 논과 밭에는 벼도 아무런 곡식도 남김없이 다 거두어들인 뒤에,
해도 짧은 늦은 가을날,
농부는 밭을 갈고 논을 잘 손질하여서,
너를 차디찬 땅 속에 깊이 묻어 놓았다.
차가움이 엉긴 흙덩이들을 호미와 고무래로 낱낱이 부숴 가며,
농부는 너를 추위에 얼지 않도록 주의해서 굳고 차가운 땅 속에 깊이 묻어 놓았었다.
"씨도 제 키의 열 길이 넘도록 심어지면 움이 나오기 힘이 든다."
옛 늙은이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며,
농부는 너를 정성껏 땅 속에 묻고,
이제 늦은 가을의 짧은 해도 서산을 넘은지 오래고,
날개를 자주 저어 까마귀들이 깃을 찾아간 지도 오랜,
어두운 들길을 걸어서 농부는 희망의 봄을 보릿속에 간직하며, 차가운 허리도 잊고 집으로 돌아오고 했다.

2
온갖 벌레들도,
부지런한 꿀벌들과 매미들도 다 제 집 속으로 들어가고,
몇 마리 산새들만이 나지막하게 울고 있던 무덤가에는,
온 여름 동안 키만 자랐던 억새풀 더미가,
갈대꽃같은 솜꽃만을 싸늘한 하늘에 날리고 있었다.
물도 흐르지 않고,
다 말라 버린 갯강변 밭둑 위에는 앙상한 가시덤불 밑에 늦게 핀 들국화들이 찬 서리를 맞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논둑 위에 깔렸던 잔디들도 푸른 빛을 잃어버리고,
그 맑고 높던 하늘도 검푸른 구름을 지니어 찌푸리고 있는데,
너,
보리만은 차가운 대기 속에서 솔잎 끝과 같은 새파란 머리를 들고,
머리를 들고,
하늘을 향하여,
하늘을 향하여 솟아오르고만 있었다.
이제,
모든 花草는 地心 속의 따스함을 찾아서 다 잠자고 있을 때,
너,
보리만은 억센 팔들을 내뻗치고,
새말간 얼굴로 生命의 보금자리를 깊이 뿌리박고 자라왔다.
날이 갈수록 해는 빛을 잃고,
따스함을 잃었어도,
너는 꿈쩍도 아니하고,
그 푸른 얼굴을잃지 않고 자라왔다.
칼날같이 매서운 바람이 너의 등을 밀고,
얼음같이 차디찬 눈이 너의 온몸을 덮어 억눌러도,
너는 너의 푸른 생명을 잃지 않았었다.
지금,
어둡고 차디찬 눈밑에서도,
너,
보리는 장미꽃 향내를 풍겨 오는 그윽한 六月의 薰風과,
노고지리 우짖는 새파란 하늘과,
산밑을 훤히 비추어 주는 太陽을 꿈꾸면서,
오로지 기다림과 희망 속에서 아무 말이 없이 참고 견디어 왔으며,
五月의 맑은 하늘 아래 아직도 쌀쌀한 바람에 자라고 있다.
3
춥고 어두운 겨울이 오랜 것은 아니었다.
어느덧 南向 언덕 위에 누른 잔디가 솔잎을 날리고,
들판마다 민들레가 웃음을 웃을 때면,
너,
보리는 논과 밭이 산등성이에까지,
이미 푸른 바다의 물결로써 온 누리를 덮는다.
낮은 논에도,
높은 밭에도,
산등성이 위에도 보리다.
푸른 보리다.
푸른 봄이다.
아지랑이를 몰고 가는 봄바람과 함께 온 누리에 푸른 봄의 물결을 이고,
들에도,
언덕 위에도,
산등성이에도,
봄의 춤이 벌어진다.
푸르른 생명의 춤,
새말간 봄의 춤이 흘러 넘친다.
이윽고 봄은 너의 얼굴에서,
또한 너의 춤 속에서 노래하고 또한 자라난다.
아침 이슬을 머금고,
너의 푸른 얼굴들이 새날과 함께 빛날 때에는,
노고지리들이 쌍쌍이 짝을 지어,
너의 머리 위에서 봄의 노래를 자지러지게 불러 대고,
또한 너의 깊고 아늑한 품 속에 깃을 들이고,
사랑의 보금자리를 틀어놓는다.
4
어느덧 갯가에 서 있는 수양버들이 그의 그늘을 시내 속에 깊게 드리우고,
나비들과 꿀벌들이 들과 산 위를 넘나들고,
뜰 안에 장미들이 그 무르익은 香氣를 솜같이 부드러운 바람에 풍겨 보낼 때면,
너,
보리는 공히 머리를 숙이기 시작한다.
온 겨울의 어둠과 추위를 다 이겨내고,
봄의 아지랑이와,
따뜻한 햇볕과 무르익은 장미의 그윽한 향기를 온 몸에 지니면서,
너,
보리는 이제 모든 苦礎와 悲鳴을 다 마친 듯이 고요히 머리를 숙이고,
머리를 숙이고 聖者인 양 기도를 드린다.
5
이마 위에는 땀방울을 흘리면서,
農夫는 기쁜 얼굴로 너를 한아름 덥썩 안아서,
낫으로 스르릉스르릉 너를 거둔다.
너,
보리는 그 순박하고,
억세고,
참을성 많은 농부들과 함께 자라나고,
또한 농부들은 너를 심고,
너를 키우고,
너를 사랑한다면서 살아간다.
6
보리,
너는 항상 淳朴하고,
억세고,
참을성 많은 농부들과 함께,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955年 東亞日報
한흑구 문학비 보리 : http://blog.empas.com/pyo7803/11875084
1971년 일지사
안산시립합창단-보리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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