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馹孫 文學碑 - 頭流記行錄 文學,詩...碑



頭流記行錄-두류기행록

滄波萬頃櫓聲柔 창파만경노성유 푸른 물결 가득하고 노 젓는 소리 고요한데
滿袖淸風却似秋 만수청풍각사추 소매 가득 맑은 바람 도리어 가을인가
回首更看眞面好 회수경간진면호 고개 돌려 다시 보니 참 모습이 아름다워라
閒雲無跡過頭流 한운무적과두류 느릿한 저 구름 두류봉 지나 자취를 감추네
1489.4.29 (26세) 섬진강에서 두류산을 읊은 詩

김 일손(金 馹孫, 1464년 ~ 1498년 7월)은 조선 성종·연산군 때의 문신이며 학자, 사관이다.
본관은 김해,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또는 少微山人이며 대대로 청도에 살았다.
할아버지는 克一, 아버지는 집의-執義 맹-孟이며, 어머니는 이씨이다.

1464년 태어나 1478년 14세 단양 우씨와 혼인하고, 선산의 이맹전을 찾아 배알하였다.
1481년 까지 할아버지로부터 <소학>, <四書>, <통감강목通鑑綱目>등을 배웠으며, 이후 김종직의 문하에 들어가 평생 사사하였다.
1483년 부친상을 당하였고, 그 당시 사림의 대표적 으뜸이던 김종직의 문하생이 되었다.
1486년 (성종 17년)에 사마시에 수석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같은 해 식년문과-式年試에 차석으로 급제하여
예문관에 등용된 후,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사가독서-賜暇讀書한 뒤 이조정랑-吏曺正郞까지 올랐다.
1489년 음력 11월 요동질정관으로 1차로 북경을 다녀왔다.
1490년 음력 3월 노산군 입후치제를 주장하고 음력 4월 <육신전>을 첨삭하였으며 음력 11월 진하사가 명나라에 파견될 때
서장관으로 다시 북경에 다녀왔다.
성종 때 춘추관의 기사관으로, 전라도 관찰사 이극돈-李克墩의 비행을 직필하고,
그 뒤 헌납 때 이극돈과 성준이 새로 붕당의 분쟁을 일으킨다고 상소하여 이극돈의 원한을 샀다.
1496년 음력 1월 소릉복위 상소를 올리고 음력 3월 모친상을 당했다.
1498년 (연산 4년)<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앞서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史草에 실은 것이 이극돈, 유자광 등을 통해
연산군에게 알려졌다. 그 내용인 즉, 세조를 비방하고, 노산군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던 것이다.
곧 체포되어 심한 고문 끝에 대역죄로 음력 7월 광통방-廣通坊(조흥은행 본점이 있던 광교 네거리 근처)에서 능지처참되고,
권경유, 권오복, 허반 등 다른 많은 사류도 화를 당하게 되었다.
이를 무오사화라 한다. 이를 계기로 성종 때에 날개를 펴며 등장한 신진 사림은 집권층인 훈구파에게 거세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 후 신원-伸寃되고, 문민-文愍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도승지가 추증되었다.
목천의 道東書院, 청도의 자계-紫溪書院에 배향되었다.

문집에 <탁영집-濯纓集>있으며 <회로당기-會老堂記>, <속두류록-續頭流錄>등 26편이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수록되어 있다.
1998.4
한국문학비건립동호회 이상보 짓고 심 재완 쓰다.
한국문학비건립동호회 강재철외 86인 협찬外 청도군수, 후손 영모회장, 17대 종손 세움.
경북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 자계서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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