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석하-소설 이 휘 소.

표지의 사진은 고 이 휘소님이 76년 12월 6일 NewYork Time지에
세계 과학의 전망에 대하여 기자회견하는 사진.
故 李 輝昭 (1935.1.1~1977.6.16)
서울출생.경기중,고등학교. 서울대학교 화공학과 입학, 1955 미국 유학.
Ohio주 Miami 대학 졸업(이학사)
University of Pittsburgh 대학원 졸업 (이학석사).
University of Pennsylvania 대학원 졸업 (이학박사)

이론물리학자. 일명 벤저민 리(Benjamin W. Lee).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 2학년 재학중 미국으로 건너가 마이애미대학 물리과에 편입하였다.
이어 피츠버그대학에서 석사학위,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61년 펜실베이니아대학 조교수가 되고 63년 교수에 승진하였다.
74년 뉴욕주립대를 거쳐 시카고대학 이론물리학 교수 겸 페르미가속기연구소 물리부장으로 취임,
세계 핵물리학자 가운데 제 1 인자로 부상했다. 같은 해 미국 국무부의 요청으로
서울대학교에 대한 교육개발처(AID) 교육차관 타당성조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하였으며,
77년 주한미군 철수가 긴급현안으로 대두되자 장거리유도탄과 핵무기개발원리를
정리한 문서를 다리의 살 속에 감추고 한국에 들어와 정부당국에 제공하였다.
그러나 그해 일리노이주 남부에서 자동차사고로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출처:엠파스백과사전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읍니다의 실제 모델.
故 李 輝昭에 대한 평
내 밑에 아인슈타인도 있었지만 이휘소의 능력은 이미 그 위에 있었다.
- 오펜하이머(전 프린스턴연구 소장)
이휘소에게는 60대 중반에 이미 노벨상을 주었어야했다.
- 양진녕(1957년 노벨상 수상자)
그와 같이 6개월간 생활하면서 나는 도리어 이휘소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 겔만(1969년 노벨상 수상자)
이휘소는 현대물리학을 10여년 앞당긴 천재이다.
이휘소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이 부끄럽다.
- 살람(1979년 노벨상수상소감 중에서)
이 과학자의 삶이야말로 학문적인 약소국이라는 열등감을 가져온 사람들에게 가슴 벅차게 자랑스러운 생애의 기록이다.
- 윤호미(조선일보)
이휘소는 현대사에서 한국이 낳은 가장 뛰어난 세계적인 과학자이다. - 월간조선 99년 2월호

공석하 - 1941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과 연세대 대학원을 나온 이후 덕성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1960년 제1회 자유문학상 수상, 이후 시집「상의 주문」「사물의 빛」
「겨울서정」, 고전시가 감상집「우리고전시 감상」, 영미시 감상집「영미시의 이해」,
소설「거지화가 최북」「공자를 찾아서」「참성단을 찾아서」「프로메테우스의 간」
「삼풍백화점」등이 있다.
책 머리에
한국이 낳은 천재 과학자 이 휘소.
아인슈타인보다 더 뛰어나다고 알려진 인물. 20세기 후반의 세계물리학계를 지배한 핵 물리학자.
노벨상을 타기 직전 42세의 젊은 나이에 의문사를 당해야만 했던 석학.
학문보다 조국을 더 사랑하여, 조국이 공산화될 위험에 처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때엔 목숨을
건 행동까지도 실천에 옮겼던 애국자.
그래서 먼 이국 땅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세계물리학계의 거목.
이 책은 바로 그 이휘소의, 짧지만 뜨거운 삶의기록이다.
1993년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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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여왕 2005/03/18 11:14 # 답글

    무궁화꽃의 실제 주인공이군요
  • 항구 2005/03/19 22:18 #

    네.
    저도 무궁화를 읽고 알았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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